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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1월]인간, 예술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_최대진 개인전(Human Work)_대안공간 루프Viumgraphy writes/전시 리뷰 2012. 1. 29. 22:12
조금 과장되게 말해 예술은 처음부터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먹고 사는 일’과 예술은 전혀 동떨어진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의 기원을 이야기하며 그것의 주술적 의미를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예술은 곧 인간 자신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예술은 인간의 삶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인간 삶의 조건과 규범을 결정하는 지배 요소들-정치, 종교와 같은-이 변화할 때마다 예술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었다. 요컨대 인간의 삶과 예술은 이데올로기라는 조건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한 예술이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대신 그것에 저항하였다 해도 그것은 결국 예술과 이데올로기의 불가분성을 드러낼 뿐이다. 예술이 현실 세계 너머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백색의 벽면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가 현실과 단절되는 듯 보이는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최대진은 벽화, 드로잉, 오브제 등의 작업을 통해 노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노동” 정도로 직역 가능한 전시의 타이틀 <Human Work>에서부터 유추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노동이 이데올로기라는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알튀세(Althusser)의 개념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란 주어진 사회의 중심에 있는 생활양식과 역사적 역할을 부여받은 재현들-이미지, 신화, 생각, 개념 등-의 체계로서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Globe No.1>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막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새장으로 표현된 세계는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는 이데올로기로 여겨지는 것이다. 또한 보통의 가족 혹은 노동자로 보이는 플라스틱 모형 인간들은 종양이나 쓰레기 더미를 상기시키는 폴리우레탄 덩어리 위에 존재하는데, 이 역시 마르크스(Karl Marx)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예술가 또한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예술 또한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작품의 생산을 일종의 노동으로 간주할 때 그것은 작가의 내적 동인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외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Bad Company>는 바로 이러한 점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여기에서 하부구조 또는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쓰레받기의 형태를 지닌 하얀 왁스덩어리로 나타나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상징되는 예술을 쓸어 담고 있다. 이는 예술 또한 현실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대진의 태도는 프로파간다적 표현 요소를 통해 더욱 강력하게 작동된다. 그의 벽화 작업은 고대 벽화 작업과 멕시코 벽화 운동의 방법론을 취하는데, 이는 예술이 지닌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도입한 결과로 보인다. 프로파간다는 급속히 퍼져 나가 사람들의 사고에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가장 이해되기 쉬운 방식으로 제작되어야 했고, 벽화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검은 먹으로만 그려진, 농담마저 제거된 최대진의 벽화는 바로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 사건들을 자신만의 관점을 거쳐 단순한 형태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덧붙임으로써 프로파간다의 요소를 예술과 접목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프로파간다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Destroy Big Show>에서 나타나는 파괴된 전후의 카셀(Kassel) 풍경은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되는 전쟁이라는 사건을 제시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카셀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변모시킨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최대진의 작업 형식과 내용은 생산과 파괴라는 무한한 순환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노동을 통한 새로운 것의 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은 자연스럽게 폐기의 과정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파간다의 형식을 취하는 최대진의 벽화 또한 미술관의 벽면에 그려지자마자 곧이어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 또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작업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다시 영향을 받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대량 생산된 두루마리 화장지로 이루어진 <Babel>은 하늘에 닿고자 욕망하는 오늘날의 이데올로기가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된 예이다. 또한 서양에서는 화장실용으로 여겨지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통해 작가는 어쩌면 이 시대의 이념을 은유하였을 것이다.
최대진의 작업은 예술이 현실과 무관하고 소수에 의해 창조되는 무엇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전복한다. 오히려 그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을 통하여 그것이 우리의 세계와 삶과 관계 맺고 있음을, 특히 이데올로기와 통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개인적인 삶의 태도일지라도 그것이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면 예술가의 작품 생산 또한 그러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예술을 통해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의 작업은 조금 더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Viumgraphy writes > 전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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