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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티클2월]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박진영 개인전
    Viumgraphy writes/전시 리뷰 2012. 3. 1. 03:12


    박진영(Area Park) 개인전
    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_아틀리에 에르메스
    2012. 1.6 - 3.13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지난 동일본 대지진의 현장을 찾아 기록한 박진영의 사진에서 자연의 거대한 힘과 공포, 그리고 극적인 상황들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고 전시장을 찾고자 한다면 일찌감치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물론 그의 사진들에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가 표면적으로 나타나 있기는 하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초여름에 내린 눈>은 관객들이 곧 그러한 경고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자연의 섭리나 재앙 속에서의 희망 같은 뻔한 문구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의 관심은 대지진이라는 대재앙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된 그의 작업은 재앙의 현장을 기록한 단순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관심이 기록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작업들이 보여준 변화의 과정들을 통해 명확해진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현상과 그 이면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져 왔다.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 분단과 이념의 문제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관점들을 사진을 통해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작인 <히다마리>부터 작가는 변화의 징후를 보였다.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히다마리>를 통해 사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정의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던 것이다. 재난의 현장에서 촬영된 사진이지만 재난 자체를 기록하는 것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그의 태도 변화에 있다.

    그는 대지진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제목 대신 <사진의 길>이라는 제목을 이번 전시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는 그의 관심이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것에 있음을 반증한다. 실제로 그는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통한 손쉬운 사진 촬영에 의문을 던지며 사진의 본질을 고찰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는 폐허로 변해 버린 풍경 대신 주인을 잃고 여기저기 흩날리는 사진들과 가족의 사진을 수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를 가족의 사진을 애타게 찾는 생존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그(것)이 거기에 있었음’을 인식하도록 하는 사진의 본질을 엿보았을 것이다. 그가 센다이현 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네코 마리의 앨범을 따로 전시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진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이다. 일본의 아마추어 사진가가 딸의 성장과정을 담은 이 앨범의 주인공은 이제 생사를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앨범 속 사진을 통해 그가 분명 이 세상에 존재했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박진영에게 있어 대지진으로 인한 폐허의 현장은 사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간파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고 엄청난 상실의 현장에서 무엇인가 여기에 존재했음을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사진뿐이고, 바로 이 점이 사진의 본질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밝은 방』을 통해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반드시) 말하는 게 아니라, 존재했던 것을 다만 확실하게 말한다”고 밝힘으로써 사진의 노에마를 언명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폐허의 풍경을 기록하는 일 대신 그곳에 남겨진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의 사진 속에 담긴 주인을 잃은 카메라와 사진 액자들, 그리고 어느 초등학생이 매고 다녔을 란도셀은 그것들이 거기에 있었음을 증언할 뿐 대지진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 사진들로부터 대재앙의 현실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사물들이 진흙이 묻은 바닥에 놓여 있다는 것뿐이다. 이처럼 그는 대지진의 현장에서 마주하게 된 대상들을 사진의 한가운데에 배치하여 그것이 거기에 존재했음을 밝힘으로써 사진의 길을 자문한다.

    결국 우리가 그의 사진 속에서 대지진이라는 구체적 사건을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개별 사진에 붙은 제목, 즉 텍스트에 의해서이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나 군데군데 나타나는 폐허의 현장만으로는 그것이 대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것임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촬영장소와 대상, 그리고 그 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의 평균 높이를 적은 사진의 제목을 보고서야 우리는 사진 속 대상이 대재앙의 사건으로 인한 것임을 확증할 수 있다. 단적으로 <사진관이 있던 자리>라는 제목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의 사진 속에서 텅 빈 공터만 목격할 뿐, 사진관의 부재와 그 원인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진에 있어서 텍스트는 대상의 부재를 증명하는 사진의 본질을 뒷받침하고 강화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즉, 그것은 단순히 사진 속 대상들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가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각 작품의 제목은 분명 대지진이라는 사건의 비극성과 파괴성을 드러내기보다 사건 이전의 사진 속 대상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함으로써 다시 한 번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 경향아티클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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