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2010.2.19~3.5) '갤러리 인IHN'에서 <Pink & Blue Project II>라는 타이틀로 윤정미의 개인전이 열렸다. 2005년 <Pink & Blue Project>에 담긴 아이들을 다시 찾아가 그들의 소유물들이 지닌 색과 종류의 변화를 추적한 결과를 촬영하고 이를 전작과 함께 보여주는 전시였다. 아이들의 변화과정을 일대일로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이 기존의 전시들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교 과정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작업을 다시 보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선택한 표본들에 대한 질문이 바로 그러한 다시 보기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미흡하지만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윤정미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 <Pink & Blue Project>가 <Pink & Blue Project II>라는 속편으로 다시 우리 앞에 등장한다는 예고를 접하고 나는 조금 의아해졌다. 「라이프」Life 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만큼 유명세를 톡톡하게 치른 그녀의 전작으로 그녀의 역할은 충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섹스와 젠더라는 서로 다른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아이들이 소유한 물건들의 색으로 이야기했던 그녀의 <Pink & Blue Project>는 명확하고 직설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매우 감각적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핑크색 물건들을, 남자 아이들은 파란색 물건들을 지배적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면서, 그녀는 그것이 과연 생물학적 결정론 탓인지 성에 대한 부모들의 사회적 통념 탓인지 집요하게 묻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정답인지, 혹은 어떤 것이 보다 나은 설명인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의 색은 둘 모두가 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들을 동일한 형식으로 다시 촬영하여 우리에게 제시한 바로 이 순간 발생했다. 전작들과 나란히 전시된 최근작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소유물들 하나하나 - 색이 아닌 - 에 대한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 <Pink & Project II>로 윤정미와 그녀의 아이들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선 이번 <Pink & Blue Project II>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변화는 이미 예측가능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전작에 비해 충격이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설마 이렇게까지 완벽히 양분된 모습일 수 있을까 자문하게 만들었던 전작의 충격을 이번에는 만족시켜주지 못한 것이다. 전작이 '설마'였다면, 이번에 그녀가 보여준 아이들의 모습은 '역시'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으리라.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를 경험하고 어른이 된 우리들의 경험은 그녀의 아이들이 보여준 선택의 스펙트럼의 확장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한다. 더 큰 문제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팽팽했던 관계가 이번 작업들에서 깨져 버렸다는 점이다. 이또한 문명 사회의 일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학습이라는 행위에 의해 귀결된 당연한 결론일 테지만, 두 가지 성 정체성 사이의 긴장관계가 완연했던 기존의 작업에 비해 맥이 풀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이러니 하게도, 핑크와 블루로 양분된 이분법의 세계였던 전작은 이러한 두가지 성 정체성이 비교적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성이 특정 색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수도 있다는 전제와, 유아들의 색 선호가 사실은 사회적인 통념에 따른 부모들의 강요일 수도 있다는 전제가 맞부딪히는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윤정미의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사회적 학습과 이에 대한 자문을 통해 확립해 나가는 개별자로서의 취향과 마주하게 될 뿐이다.
이렇듯 당연해 보이는 결과의 이면에는 표본의 한계라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정미의 작업이 젠더의 문제를 지배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것은 사회과학적 연구방법론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즉, 어떠한 사회과학적 가설을 증명하거나 부정하기 위해서는 보편성의 획득을 담보할 수 있는 충분한 표본의 수가 절대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윤정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이들의 수는 어떠한 보편성을 증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 삶의 다양성을 보편적인 틀 안에 고정시킨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은 자명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의 아이들은 우리 모두를 납득시킬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작업에서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결국 사회적 학습의 결과가 생물학적 성에 승리를 거둘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아비투스habitus의 반란"(박평종)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그녀의 결과물은 '인간은 그 어떤 존재보다 사회적 존재'라는 우리들의 통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으로 비춰지기에 다소 불편하기까지 하다. 기존의 작업에서 보여졌던 '본성'과 '문화' 간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주었던 고민이 다분히 통상적인 결론에 다다른 듯 한 것이다. 교육과 경험을 통한 사회화의 과정 속에서도 분명 인간은 태생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무조건 사회성이 더욱 우세한 방향으로 인간의 삶이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만약 아동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충돌을 관찰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회화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를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전시가 기존의 작업과 비교 가능하도록 배치됨으로써 발생된 또다른 표본의 문제는 바로 질적인 문제이다. <Pink & Blue Project>에서는 미처 발견되지 않았던 표본 선택의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가 변화된 아이들과 수집물들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특정 색상에 대한 아이들의 선호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는가를 지켜보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집물들 또한 하나씩 비교해 보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도대체 아이들은 어떠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또 어떤 것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로 우리는 표본의 질적 한계를 목도하게 된다. 사물들의 색상에 주목하느라 <Pink & Blue Project>에서는 묻지 못했던 아이들의 가정 환경, 특히 경제적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선, 아이들의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우리는 아이들이 저토록 많은 물건들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아이들의 방을 가득 채운 물건의 수는 곧 부모의 경제력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윤정미의 아이들이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 속해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또한 아이들이 소유한 사물들에서도 경제력의 징표는 수두룩하다. 한글로 된 책들은 아이가 한국인임을 알려주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영어책들, 국산이 아닌 외산 '콜게이트Colgate' 치약, 그 밖의 장난감과 수집물들은 그들 부모들의 경제력이 중산층 이상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교적 형편이 좋지 않은, 혹은 이들보다 훨씬 부유한 아이들은 어떠한 색의 물건들을 소유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계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아기의 아이들은 여전히 핑크와 블루로 완연하게 나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성장 후에는 <Pink & Blue Project II>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취향을 지닌 개인들의 모습으로 귀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즉, 사진은 이 가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선, 경제력의 수준이 윤정미의 표본들 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소유물의 수가 현격히 적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색상의 선택권 또한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최상위 계층의 아이들은 보다 많은 소유물의 수와 보다 중성적인 색상의 소유물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고급 고가의 상품일수록 원색보다는 중성적인 톤의 색상이 많다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생각들도 가정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기에, 이들 모두를 표본으로 삼았다 할지라도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Pink & Blue Project II>를 통한 전작과의 비교는 표본들에 대한 대표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한다. 다양한 표본들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조사는 최종 결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Pink & Blue Project>와 <Pink & Blue Project II> 작업 모두 보는 이들에게 섹스와 젠더에 대한 매우 직설적이며 명확한 화법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는 윤정미의 커다란 장점이자 무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예측 가능한 결과를 보여준 <Pink & Blue Project II>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논쟁의 여지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기존의 <Pink & Blue Project>와의 비교는 이전에는 잘 생각할 수 없었던 대상 표본들에 대한 비판적 관찰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표본의 수뿐만이 아니라, 섹스와 젠더의 문제를 사진으로 고찰하기 위한 다양한 변수들의 적용과 통제가 여의치 않아 보이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Pink & Blue Project>가 앞으로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작업 속에 보다 복합적인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