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클4월]구경꾼이 되지 않는 방법-정주하_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Viumgraphy writes/전시 리뷰 2012. 4. 26. 15:56
엄밀히 말해 이번 작업에서 정주하의 관심은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결과에 있다. 그리고 이는 핵물질의 비가시적 위험에 대한 그의 오래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후쿠시마 방문 전부터 국내의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대해 작업해 왔다. 특히 2008년의 <불안, 불-안>전은 원전의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불감증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원전의 존재를 쉽게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일상 속에 그것의 위험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잠복하게 되었는지를 증명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사진 속 일상을 ‘불안’한 풍경으로 재인식할 것을 촉구함과 동시에, 그 원인이 원전이라는 ‘불(火) 안(內)’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정주하에게 있어 후쿠시마는 대지진의 장소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원전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공간이었다. 지금까지의 그가 방사능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에 그쳤다면, 후쿠시마 방문을 통해 그는 비로소 그 위험의 진면목을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그의 후쿠시마 방문 동기를 추적하는 까닭은 도호쿠 대지진을 다룬 전시들이 반복적으로 열리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수많은 목숨을 한 순간에 앗아간 사건이-손택(Susan Sontag)의 지적처럼-단지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후쿠시마 방문 동기는 기존의 관심이나 작업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대지진의 현장을 작업의 소재로 취한 이들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이 재난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눈여겨보아야 한다. 일상적인 전원의 풍경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는 사진 속에서 재난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사진 속 장소들이 후쿠시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야 관객은 사진 속 들판 너머의 잔잔한 바다가 그 땅을 집어삼켰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또한 수확할 시기를 넘긴 감들이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그곳이 원전 사고가 일어난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그 풍경 속에 사람의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에야 그 공간은 재난의 공간으로 재정의 된다. 그가 후쿠시마를 이러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재난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에 작가가 의문을 품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대지진으로 인한 시각적 충격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원전 사고의 비가시성이야말로 그가 후쿠시마를 평화로운 전원 풍경으로 그리는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재난은 인간의 힘으로 복구될 수 있지만 원전 사고와 같은 비가시적 재난은 일상적 풍경에서 인간의 존재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재현 방식은 전시 전체의 제목으로 차용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그것과도 무척 유사하다. 이상화와 정주하 모두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풍경들은 각각 제국주의 일본과 방사능에 의해 침탈당한 재난의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이러한 전시 제목의 사용은 고통의 연대 가능성을 암시한다. 우선, 이상화의 시에서 “빼앗긴 들”이 일본에 의해 짓밟힌 국토를 표상하였다면, 정주하의 작업에서 빼앗긴 들은 원전 사고로 인해 재난의 땅이 된 후쿠시마를 표상한다. 물론 식민지 지배의 아픔을 노래한 이 말을 그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화의 시는 땅을 빼앗겨 본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역사로부터 되살려내며, 이를 바탕으로 고향 땅을 잃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제 그들의 고통은 작품의 소재로 전락한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함께 공유되고 나눌 수 있는 연대 가능한 고통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작품 밖 현실에서의 고통의 연대는 여전히 어려워만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 재앙에 대한 일본인과 우리의 인식 차이가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를 정의한다면, 그것이 지켜지는 상태는 ‘안전’을 정의한다. 즉, 일본인들이 지닌 자연 재앙에 대한 공포와 안전에 대한 욕망의 크기는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땅이 지진과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 연대의 어려움을 인식하는 일에 단순한 구경꾼이 되지 않는 방법이 있음 또한 명백하다.
'Viumgraphy writes > 전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티클6월]망각을 욕망하다-노순택 개인전 (0) 2012.07.03 [아티클5월]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김신일 개인전 (0) 2012.05.29 [아티클3월]사진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전민혁 개인전 (0) 2012.04.08 [아티클2월]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박진영 개인전 (2) 2012.03.01 [아티클1월]인간, 예술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_최대진 개인전(Human Work)_대안공간 루프 (0) 2012.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