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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길 Stephen Gill - Hackney FlowersArchive/아티스트 2009. 9. 22. 04:01
스테판 길 Stephen Gill
1971년 영국 브리스톨 출생
어린 시절 스테판 길은 아버지에 의해 사진에 이끌렸다. 그는 일찍이 이러한 흥미를 학교에 다니면서 파트타임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오래된 사진들을 복원하거나 가족사진 촬영을 도우면서 키웠다. 16세에 학교를 마친 그는 1992년 브리스톨의 필튼 컬리지(Bristols's Filton College)의 사진 재단에 등록하기 전까지 시내의 사진관(one-our photo lab)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다.
스테판의 사진들은 이제 전세계의 다양한 콜렉션에서 선보이고 있다. 또한 그의 사진들은 많은 국제 갤러리들, 박물관들(Victoria and Albert Museum, Victoria Miro Gallery, Palais des Beaux Arts in Brussels and Rencontres d'Arles, Munich's Haus Der kunst, Photo Espana in Madrid)에서 전시되었다.
해크니Hackney는 런던 동부에 위치한 곳으로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잠깐 소개된 적이 있는 곳이다.
원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던 지역으로 여겨졌으나 그로 인한 저렴한 집세 덕택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해크니에 흘러들었고, 이것이 볼거리와 관광객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뉴욕의 소호나 이스트 빌리지, 윌리엄스버그 쯤 되는 곳으로 보면 될 듯하다.
스테판 길은 2002년 후반 빌보드광고판의 뒷면을 촬영하러 다니던 중에 우연히 해크니 지역을 발견했고,
이후 꾸준히 해크니와 관련된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기서 살펴볼 그의 사진들은 그 중에서도 'Hackney Flowers' 프로젝트를 위해 촬영된 사진들인데,
촬영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그는 값싼 플라스틱 카메라(일명 토이 카메라)로 해크니의 풍경과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 위에 해크니 지역에서 수거한 각종 씨앗, 꽃잎, 열매 등을 배치하여 구성한 뒤 고화질 카메라로 재촬영 하고 있다.
우선 이렇게 촬영된 그의 사진들은 일차적으로 매우 강력한 시각적 체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이러한 시각적 체험은 더 나아가 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리해서 들여다보게 하고,
그를 바탕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좀 더 부연해 말하자면, 간단해 보이는 그의 촬영 방식에서 우리는
사진이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재현의 문제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우선 싸구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그 첫 번째요,
그 이미지를 고해상도 카메라로 다시 찍은 사진이 그 두 번째며,
첫 번째 사진 위에 놓인 오브제의 이미지가 그 세 번째다.
그러니까 그의 사진에는 재현과 재현의 재현이
서로 분리된 듯 공존하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또 이야기 하겠다.)
그는 해크니가 산업화한 도시의 삶과 자연생태가 교묘히 공존하는 모순 가득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연보다는 도시라는 틀에서 자연이란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추출하고자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값싼 카메라로 찍은 흐릿한 배경 이미지들이 주로 인공적인 풍경들 혹은 그 풍경들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점과
그러한 이미지 위해 자연물들을 오브제로 올려놓았다는 것이 명확히 보이는 그의 사진들은
이러한 그의 진술과 완벽히 일치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들이 일차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메세지는
아무리 극단으로 문명과 산업이 치닫고 있더라도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만으로만 본다면 그의 사진은 같은 주제들을 표현하였던
기존의 사진작가들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단순하지만 훌륭한) 촬영방식은
시각예술로서의 사진이 같은 메세지를 어떻게 명료하고 강렬하며 설득력있게 전달할 수 있는가를 실증하고 있다.
즉, 완성된 그의 이미지는
재현의 재현으로 표현된 인공이라는 층layer과 자연이라는 오브제의 재현이라는 두 번째 층 간의 경계를
명확히 보여주면서 메세지의 명료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공이 값싼 카메라로 흐릿하고 불완전하게 보이는 반면,
그 위를 뒤덮는 자연물들이 선명하게 기록되고 있다는 점은 그의 방법론이 지니는 강점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완성된 사진은
사진을 찍은 사진이자, 오브제를 찍은 사진이기도 하다.
즉 그의 사진은 '이미지의 재현'과 '대상의 재현'이 서로 명확하게 구분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의 해상도에 의해 극명하게 구분되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분리된 듯 보이는 그의 이미지가 동시에 상호연관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언뜻 볼 때 자연물의 힘이 인공물에 비해 강하다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연물의 오브제들을 배열한 방식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인공과 자연의 위계를 결정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상보성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오브제들은 배경을 이루는 이미지들과 상당한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고,
이는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오브제들은 배경의 이미지를 '압도'하는 대신 '공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배경으로 쓰인 이미지의 흐릿함은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사진이 가지는 부재증명으로서의 특징과도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은 내가 혹은 피사체가 거기에 있다는 존재증명이자
있었다가 이제는 없다는 부재의 증명이기도 하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부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흐릿한 형태로 변모해 나간다.
그리고 작가가 사용한 흐릿한 이미지들은 그가 촬영한 공간이
마치 오래된 기억 속의 한 장면인양 보이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즉, 관람자는 배경으로 쓰인 그 공간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거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흐리게 촬영된 배경의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흐릿함이 관람자의 정서, 그 중에서도 기억과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 때문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기억, 심지어는 당시에는 끔찍했던 일조차 기억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낭만적이고 그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오브제의 배경이 되는 이미지들 또한 그러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흐려진 배경은 부정적 인상을 다소 긍정적인 무엇으로 변모시키는 힘을 지니게 되며,
이는 자연물이라는 오브제와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보다 그럴듯한 조화를 선보이게 한다.
어쨌든 그의 이미지가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보다 정리되고 명료한 시각적 표현법을 통해 표현하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
또한 사진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재현의 문제까지도 교묘하게 이러한 논의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도
그의 작업을 흥미롭게 보도록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문득,
그의 사진이 완전히 도치된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즉, 도시라는 틀에서 자연을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틀에서 도시를 추출하는 방식 말이다.
그랬다면 이미지는 보다 부정적인 인상을 풍기게 되었을 것이고,
두 대상 간의 관계 또한 조화롭기보다는 매우 적대적이고 균열적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참고)
IANN, contemporary art photography in Asia Vo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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