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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 The Sadness of MenArchive/아티스트 2009. 9. 23. 00:22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필립 퍼키스는 1950년대 공군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면서 카메라를 잡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반 세기 동안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엔셀 아담스, 도로시아 랭, 존 콜리에 주니어로부터 사사했다. 그 후 뉴욕에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뉴욕 Pratt Institute 사진학과 학과장으로 지냈고 2001년 은퇴한 후에는 명예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School of Visual Art, New York University, Cooper Institute에서 객원 교수로 사진 강의를 계속 하고 있다. 사진집으로는 Warick Mountain Series (1978)와 Sadness of Men (2008)을 출간했다. 40여 년의 사진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사진 강의노트를 2002년 출판했고 한국에서는 현재 7쇄가 판매되고 있다. 구겐하임 재단, NEA, CAPS의 기금을 받았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비롯 세계 여러 뮤지엄에서 그의 작업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를 우연히 손에 넣고 읽었을 때 나는 강의라기 보다는 오히려 문학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사진을 찍는 일에 있어서 기술적인 것에 선행할 수밖에 없는 사진 찍는 마음에 대한 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퍼키스가 보여주고 있는 "여유"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늘 가슴 속에 새겨둘만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강의 노트>에서도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프린트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얼핏 보면 그저 일상의 한 장면을 촬영했다고도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이미지'처럼 보이는 그의 작업에서 어떤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작업들을 마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일상의 장면들에서 나는 바로 그 "여유"를 보았다.
아니,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는 자세로 응시할 때 얻어지는 인식의 장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적확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곧장 <사진강의 노트>의 본문 첫 문장에 집약되어 있었음을 나는 눈치챘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 <사진강의 노트> p.19, 눈빛, 박태희 옮김
그의 사진을 마주하게 되면, 바로 이 문장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데 그 이유를 살펴 보자.
앞서 이미 언급 했듯 그의 촬영 대상은 일상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독창적인 창작의 근원이 일상인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의 사진이 담고 있는 광경은 너무도 당연해서 멈추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지나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18% 그레이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은 그의 사진이 뭔가 다름을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진은 18% 그레이를 기준으로 밝게, 어떤 사진은 어둡게 프린트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콘트라스트도 제멋대로인 듯 보인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보여지는 것. 그 자체"이다.
프린트 된 사진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눈이 인식했던 대상을 프린트한 사진인 것이다.
어떤 시각적 체험은 종종 쉽게 개념이나 사고의 침범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는 한다.
좀 더 부연하자면, 시각적으로 체험된 대상들은 손쉽게 은유적인 무언가로 탈바꿈 되고 만다는 말이다.
실체가 은유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은유가 절대적 진리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그 은유가 그 대상의 본질이라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대상이 은유가 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원래의 모습이 아닌 이상적인 모습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사진의 경우에서는 원래의 시각적 체험의 데이터와 인화물의 데이터 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에서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퍼키스는 바로 이러한 오류로부터 벗어나기로 작정했다는 듯
자신의 시각적 체험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통해 아마도 그는 성급하게 대상을 은유로 변질시키는 대신
대상 그 자체를 끈기 있게 응시함으로써 그 본질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한 것일 테다.
사족이지만, 디지털 대형 프린트들이 주류가 되어 가는 이 때에
직접 작업한 크지 않은 크기의 프린트를 보는 즐거움도 자못 크다 하겠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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