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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든 마타 클락 Gordon Matta Clark - You Are The Measure Installation view
    Archive/아티스트 2009. 9. 23. 00:26

    고든 마타 클락 Gordon Matta Clark

    1943년 6월 22일 출생

    1978년 8월 27일 사망

    '건물 자르기(Building cuts)'와 '아나키텍쳐(Anarchitecture)'로 알려짐.

    고넬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나 전통적인 건축가의 길을 걷지 않음.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의 광주 비엔날레 가이드 맵에 나온 것을 옮김.




    고든 마타-클락은 1969년의 역사적인 전시회 '대지 미술(Earth Art)'에 참여한 이래 주로 무너진 건물이나 잊혀진 폐허를 소재로 한 설치미술을 해왔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둘로 쪼개기>는 교외의 한 주택을 절반으로 절단한 것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풍부하게 사용했고, 기존의 장르 관습을 거부하는 뜻에서 '아나키텍쳐'라는 신조어를 고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서로 다른 분야간의 접목을 시도하고 작품의 영역을 타학문 분야에 연계시키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 소개글에 썼듯 다양한 매체와 표현 방식으로 유관한 주제들을 표현하고 있으나 이미지 수집의 어려움 탓에 몇 컷의 이미지만을 올린다.

    또한, 작품의 정확한 제목을 알려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엄청난 수의 작품들을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보았으니

    광주 비엔날레 전반에 대한 평을 한다는 것은 참 주재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글에서 비엔날레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했으니,

    그것은 그야말로 얕은 눈으로 보고 느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고백한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 비엔날레에 대한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들통나기도 했다. 이는 글의 마지막에 고백해볼까 한다.)

     

    본인의 최근 사진 작업들이 크게 보면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다큐멘터리의 허구성을 살펴보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아직 설익은 두 눈에도 데만트와 마타-클락의 작업이 비엔날레에서 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낱낱의 사진은 사실일 수 있지만

    낱낱의 사실들이 조합되거나 임의적으로 배열될 때 그 의미나 본질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데만트나 고든-마타 또한 이러한 인식의 층위를 자신들만의 형식을 통해 기술하고 있지만,

    사회-정치적 맥락이라는 요소까지 치밀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 나와의 차이이자

    그들의 뛰어남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마타-클락의 이미지를 보면 건축물의 일부를 다양한 방식으로 촬영하고

    그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본래의 건축물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내곤 한다.

    건축을 공부했던 그는 이처럼 자신의 전공 분야와 인식의 한 방식으로서의 예술을, 그리고 그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정치적 상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비엔날레 전시장 한 켠에 붙은 그의 말을 옮겨본다:

     

    사람들이 맨 처음 인식하는 것은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파괴는 곧 시각적인 질서로, 그러고 나서, 희망컨데 인식이 고양된 느낌으로 바뀝니다. 당신은 빛이 들어와 그 안에 자리잡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래는 가능치 않았던 일이죠. 원래라면 감추어져야 했던 각도와 깊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접근할 수 없었던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역동적인 행위가 변화가 없는 정적인 건축 환경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안 형식으로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건축물이라는 육중하고 견고한 콘크리트 덩어리,

    그것은 마타-클락에 의해 나눠지고 재조립 되면서 새롭고 역동적인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재조립의 방법은 어쩌면 무궁무진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역동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말로는 '전용(Detournement)'이라고 알려진 기법의 사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든-마타가 파리에서 불문학을 공부할 당시

    그는 프랑스 해체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전용'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즉 '이미 존재하는 예술적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전용을 그는 건축물의 쪼개기와 붙이기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뉴욕에서 버려지거나 팔리지 않는 땅들을 구입하고 이를 촬영해 <가짜 부동산>(Fake Estates)라는 작업들을 하기도 했다.

    개발을 위해 무익한 그 땅들은 자본화될만한 땅이 아니었으므로

    땅에 대한 소유권이란 한낱 문서라는 가상적 형식으로 밖에 있을 수 없음을 그는 풍자하고 있다.

     

    어찌됐든 공간을 자유자재로 구성해 제시하는 그의 작업들은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대부분의 대상들이 폐허로 남은 건물인 경우가 많았음은 주목할만 했다.

    더 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듯 보이는 죽은 공간들을

    그는 있는 그대로 촬영 (혹은 기록)하되 그것들을 치밀하게 재조합함으로써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은 정치적 이슈들을 이러한 작업들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할 것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앞서 이야기 했듯

    비엔날레에 대한 나의 무지를 고백해야겠다.

     

    데만트에 대한 글에서 비엔날레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자

    다음과 같은 요지의 내용이 곧 내게 도착했다.

     

    "원래 광주 비엔날레가 젠더,거버넌스,전쟁 등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

    현대미술의 촉각을 다루는 비엔날레 전반은

    고전적 아름다움보다는 초극의 현실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온당하다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차 싶고 부끄러웠지만

    이런 글을 쓰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면 영영 깨닫지 못했을 내용이라

    부끄러움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비엔날레 홈페이지에 들어가 비엔날레에 대한 소개글부터 다시 읽고 다음의 내용을 발견했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정신적인 지주인 광주는 광주비엔날레가 개최됨으로써 시민과 문화의 열린 장으로서의 정치적인 중요성을 공고히 하는 특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요 영향과 시민 사회의 새로운 장이 한국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주로 다루었으며 당시 백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하는 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최근 10년간 광주비엔날레는 민주화의 장으로서의 기능 뿐 만 아니라 현대 미술 분야의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행 해오면서 아시아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고, 특히 한국의 사례를 모방한 기타 아시아 프로젝트에서 큐레이터의 열망을 담은 전시회가 다양하게 시도되기도 하였다. 

    - 출처: 광주 비엔날레 홈페이지 (http://www.gb.or.kr/2008gb/ko/exhibition/Exhibition.asp)

     

    그렇다. 나는 광주라는 도시 자체가 지니는 정치적인 성격을 간과하고 있었던 셈이요,

    비엔날레라는 것이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실제적 문제들을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들을 소개하는 장이라는 점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광주 비엔날레에 모인 작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사회, 문화, 정치적 이슈들의 양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며,

    그 자체가 비판의 이유가 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약간의 변명을 하고자 한다.

    비엔날레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성 때문에 내가 비엔날레에 대한 아쉬움을 표명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현재의 삶과 연관된 엄청난 이슈들을 예술이 다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프로가 아니고, 아직 작가도 아니라 풋내기이자 얕은 눈의 소유자임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번 비엔날레에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아쉬움, 뭔가 빠진 듯한 부족함 같은 것을 느꼈다.

     

    정치성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는 문제는 곧

    그것이 예술이 되느냐 선전물이 되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치의 경우만 봐도 그러하다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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