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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7월]특별하지 않은 것의 특별함-강재구 개인전 <12mm>Viumgraphy writes/전시 리뷰 2012. 7. 20. 01:42
강재구는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우리나라 군인과 관련된 작업을 선보여 왔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 사회의 거시적 특수성을 시각화해 왔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상상마당의 제4회 KT&G SKOPF 최종 선정 작가로서 그는 다시 한 번 <12mm> 연작을 통해 입대를 앞두고 있는 청년들의 초상을 제시했다. 따라서 하나의 주제의식을 이번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특수한 맥락을 어떻게 건드리고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사진이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사실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으로부터 논의를 전개시키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의 사진은 우리가 찍어 왔던 기념사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12mm>는 입대를 앞둔 우리나라 청년들의 평균적인 머리카락 길이이다. 사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입대 직전에 촬영한 이런 부류의 사진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강재구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왜 전시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그의 작업이 일종의 사회적 초상이라고 해석될 때 그것은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우선 사람들은 입대 직전의 사진들만을 모아서 보지 않는 반면, 작가는 그러한 인물들만을 선택해 재현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사진은 일종의 의사 다큐멘터리(pseudo-documentary)이다. 겉으로는 기념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부탁에 의해 포즈를 잡고 사진의 대상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즉 이렇게 재현된 인물들은 한 가족의 사랑스러운 아들로서가 아니라, 12mm의 머리카락 길이를 가진 대한민국의 예비 군인이자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또한 작가는 촬영 대상들의 머리카락 길이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여 재현함으로써 그들이 획일적이고 규율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의 신분이 됨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들이 기록사진과 예술사진을 나누는 완벽한 준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늘날 예술적인 사진으로 여겨지는 19세기 사진들이 오히려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음을 이해하는 것과 유사하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가 지적하듯 초기 사진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는 지형학적 탐구였다. 이것들은 탐험과 개발, 측량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그것들이 어느 순간 미술관으로 편입되어 예술적 담론의 장으로 흡수되었음도 지적하고 있다.1 이러한 관점은 강재구의 사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진의 내용적 측면만 봤을 때, 그의 사진은 전시장이 아닌 사회학적 연구를 위한 시각 자료로도 기능할 수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란 말과 뒤샹(Marcel Duchamps)에 의해 변기가 미술관 내부로 침투한 현상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현대 예술이 어떠한 대상을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 시켜 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 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전시장에서 목격되는 예술로서의 사진 또한 이러한 과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결국 우리가 찍은 평범한 사진들도 어떻게 조직되느냐에 따라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사진을 ‘형식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경우는 어디까지나 사진의 ‘의미적’의 측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오형근도 지적했듯-전자가 사진을 “미학, 사회학, 정치학, 문화인류학 등 형이상학적으로 바라보는 구도”라면 이제 우리는 “작업의 물리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2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사진이 꽤 크다는 것이고, 이는 그것이 기념을 목적으로 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기념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앨범에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에 의해 결정된 프린트의 크기가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그 크기로 인해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던 한 청년이 다음 사진에 등장하는 ‘12mm’로 삭발한 청년과 동일인임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입대를 앞두고 어색한 짧은 머리를 긁적이던 청년의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다음 사진에서는 자신이 짧은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입장이 바뀐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재구의 사진은 인물을 모두 중심에 위치시키는데다가 실외에서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중간 계조의 콘트라스트가 약한 중립적 표현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이를 통해 입영 직전의 극적인 감정들이 약화시킨다. 물론 인물들의 눈빛과 제스쳐,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통해 입대 직전의 초조함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촬영 기법으로 인해 그의 사진은 개인과 군인, 아이와 남자, 사회와 군대로 분기되는 우리 사회만의 특정적 순간을 탐구하는 것에 집중한다. 사진에 있어 이러한 형식적 특성들은 일상적 장면을 비일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사진의 기록적 측면을 덜 부각시키게 된다. 즉 이러한 형식적 접근을 통해 강재구의 사진은 ‘사진적 사진’만이 아닌 ‘미술적 사진’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강재구의 작업은 내용적․형식적으로 소위 ‘유형학적 사진’으로 분류될 수 있게 된다. 당대의 사회·문화적 대상들을 엄격한 규칙성과 통일성에 입각하여 촬영함으로써 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대상 자체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프린트 사이즈와 톤의 결정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형식의 결정은 그의 작업을 전시장의 벽면에 걸어야 하는 것으로 만든다.3 이러한 세부적 조건을 만족시킬 때만이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이나 친구가 아닌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은 한국에서의 유형학 사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사실 한 동안 한국 사진은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왜 대상을 유형학적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프린트 사이즈는 그토록 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가 유형학적 사진을 받아들이기에는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유형화시키려고 해도 금세 그 대상들은 사라져버리거나 상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강재구는 우리 사회의 심층에 자리 잡은 국면을 유형화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비판을 피해간다. 분단의 현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군인이라는 대상에 대한 유형학적 작업으로 탐구함으로써 작가는 한국의 유형학적 사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좋은 것이다.
- Rosalind Krauss, 「사진의 담론 공간들」, 『의미의 경쟁』(Richard Bolton Ed., 김우룡 역), 서울: 눈빛, p.333. [본문으로]
- 반이정, 노순택, 오형근, 「김한용 vs 라샤펠 & 라거펠트, 박진영 & 김옥선, 사진전 방담」, 『경향 아티클』(2012년 3월), p.76. [본문으로]
- 전시장에 걸린 그의 사진과 도록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형식의 중요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도록에 인쇄된 작은 크기의 사진들은-그것이 도록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실제로 기념사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사진이 무엇을 촬영했는지 못지않게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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