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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티클9월]아이들이 사라진 놀이터_플레이그라운드 전
    Viumgraphy writes/전시 리뷰 2012. 11. 22. 17:43

     

     

     

    장하준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당했습니다.”[각주:1]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현대인은 눈앞의 현실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불안은 느끼면서도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아르코미술관의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전은 바로 우리 사회의 은폐된 불안을 재현한다. 그리고 이는 예술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기도 하다. 예술은 분명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인간 삶의 폐부를 가장 예리하게 꿰뚫는 칼끝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전략은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제목에서 잘 나타난다. 이 말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스테레오타입으로서의 놀이터가 아닌 아이들이 사라진 2012년 ‘대한민국의 놀이터’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9명의 작가들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들이 주목하는 것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지나치는 것들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의 형상과 풍경, 골목길에 주차된 차 밑에서 눈치를 살피던 고양이, 한 번쯤 걸어봤을 법한 긴 복도와 텅 빈 주차장, 그리고 익숙한 거리의 소음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낯설게 전환시킴으로써 현실 이면에 존재하는 시대적 조건들을 시(청)각화한다. 원전 문제나 동두천의 무연고 무덤 훼손 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들로부터 현대인의 소통 문제나 소외 현상과 같은 보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목격한 대한민국의 풍경은 전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이들은 일상적 풍경의 가면을 벗겨 내거나 그것의 내밀한 본색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렌즈를 통해 불안으로 점철된 진짜 현실을 재현한다.


    이들이 목격한 시대의 불안은 서로 다른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테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의 불확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극도로 유동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언제 직장과 집을 잃을지, 언제 나의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릴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와 생존이 중요한 소시민에게 불안의 배후에 자리 잡은 불확실성의 정체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신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3.0으로 불리는 이 시대의 이념은 욕망하는 것을 향한 무차별적 경쟁을 선으로 추앙함으로써 현대인을 불확실성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그것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현대인의 실상을 재현한다. 요컨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말처럼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각주:2]이다.


    우리 모두가 불안의 정체를 보지 못할 때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재현하는 이가 바로 예술가이다. 이는 예술이 현실 생활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쓸데없는 것이라는 견해가 틀렸음을 의미한다. 물론 예술은 “위대한 산업도시를 만들고, 철로를 놓고, 운하를 파고, 제국을 확장”[각주:3]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예술은 이러한 일들을 벌어지게 하는 원리들에 내재된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일에 그 무엇보다 앞장선다. 보편적인 시각에서 당연하고 옳다고 여겨지던 것이 예술가들에 의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러한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미 과거에 제각기 발표되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지만 동시대 한국 사회의 모습이라는 주제어로 묶이면서 예술이 단지 작가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은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우선적 재능은 일상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고,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그것을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부분 이미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전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전시를 주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술을 현실과 동떨어진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현실의 진면목을 가장 제대로 드러내 주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 의해 애써 드러난 부조리한 현실이 미술관 안에서만 머물 때 예술은 보통 사람들에게 여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머물 뿐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1.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2010) [본문으로]
    2.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정영목 역, 불안 (이레, 2005) p. 124 [본문으로]
    3. 위의 책, p. 17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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