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ERTURE VOL.190]IN A LONELY PLACE - Gregory CrewdsonArchive/논문과 기사 2009. 9. 24. 03:42
IN A LONELY PLACE by Gregory Crewdson
외로운 곳에서 – 그레고리 크루드슨
본 글은 <Aperture> 190호 'UNDER THE INFLUENCE' 섹션에 실린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상의 오류가 있을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부끄럽지만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펼쳐질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심미적 인식을 형성시킨 특정한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들이다. 그들 모두는 아름다움, 슬픔, 소외, 그리고 욕망에 대한 개념을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연극성과 일상의 교차점이라는 궁극적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서 소개될 많은 이미지들은 “정적”(quiet)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불안”(disquieting)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 몇몇 이미지들은 매우 조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적막한 표면 위에 나타나고 있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심리적 상태가 작동중이다.
이러한 이미지들 안에는 강하고 매혹적인 양극성이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작업들은 외로움이나 소외의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어쩐지 잠재되어 있는 희망과 가능성의 느낌과도 혼재되어 있다. 이들 작가들은 미국인들이며, 그들 모두는 미국의 아름다움과 어두움이라는 양가적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종종 “미국의 언어”(American vernacular)이라고 불려졌던 것을 보증했다.
Edward Hopper, Western Motel, 1957.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은 이러한 전통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는 그의 이미지들에 영향을 받아온 사진, 영화, 그리고 다른 예술 작품들에 대한 언급 없이는 시각적으로 미국을 “읽는”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호퍼의 작품들은 매우 연상적이며 때로는 하나의 그림 안에서 설명적인 이야기를 말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들은 감정이 충만한 순간을 묘사한다. 즉, 그의 이미지는 마치 문제를 제시하는 듯 보이며, 그 질문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남고 만다. 그에 의해 고정된 짤막한 순간은 마치 “이전”과 “이후” 사이의 찰나에 정지되어 있는 듯 보인다.
호퍼의 그림에서 프레임의 사용을 관찰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창문, 출입구, 그리고 빛 줄기들은 모두 반복되는 모티브들이다. 다양한 프레이밍 도구들은 각기 다른 공간을 창조하며, 또한 자기지시적이다. 즉, 이러한 도구들은 그림 그리기 행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빛을 통해 수렴되는데, 빛은 이야기의 각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서사적 코드로서 그림 전체에서 작동한다. 프레임의 사용은 또한 장면을 “엿보는” 듯한 암시를 줌으로써 관음증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프레임을 통해 관찰자는 말없는 목격자로써 이미지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호퍼의 <Western Motel>(1957)은 이름 모를 호텔 방의 침대 끝에 앉아있는 고독한 여자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공허한 응시는 어떤 걱정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거나 어떤 예상을 암시하고 있다. 프레임의 하단 오른쪽에 등장하는 안락의자와 하단 왼쪽에 서 있는 여행 가방 두 개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암시하면서 관객을 그 이야기에 연루시키고 있다. 창문은 실내와 외부 공간 사이에서, 그리고 내부의 방과 이상하고 추상화된 자연 사이에서 흥미로운 역동성을 창조해내고 있다.
호퍼의 이미지들은 외로움과 단절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거기에는 언제나 가능성과 초월적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것들은 빛의 사용에 의해 확립된 것이다. 호퍼는 “심리적 리얼리스트”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그의 이미지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거기에는 은근한 신비성, 불안감, 그리고 소외감이 충만해 있다.
Kim Novak in Vertigo (dir. Alfred Hitchcock), 1958.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1958년 작품인 <현기증>(Vertigo)은 낭만적 강박(romantic obsession)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아마도 가장 자기고백적인 작품인 이 영화는 그의 예술을 지배하는 몇몇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영화에서 신체적 심리적 박약을 지닌 스카티(Scottie,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 분)는 마들렌(Madeleine, 킴 노박(Kim Novak) 분)이라는 여자의 이미지에 강박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스카티는 본질적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 여자와 같은 신기루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그녀를 소유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주디(Judy, 킴 노박 분)라는 또 다른 여성을 찾게 되며, 그녀를 그가 욕망하는 여자로 변형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가 형상화하고 있는 여자와 그가 욕망하는 여자는 같은 사람이다. 사실 주디는 그가 꿈꾸는 여자인 마들렌을 연기하기 위해 ‘고용된’ 여자인데, 마들렌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가 의심조차 시작하지 못한 살인극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낭만적 강박은 호텔방에서 스카티가 주디를 마들렌처럼 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감행하는 놀랄 만한 장면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변신이 완료된 이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와 잊혀지지 않을 녹색의 연무를 뚫고 스카티의 앞으로 걸어온다. 이 장면은 바로 호퍼를 환기시키는 매우 초현실적인 순간이다. 즉, 호텔방, 커플 사이의 이상함, 기묘한 전치, 주인공들의 집착에 당황스럽게 되는 절정이 바로 그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이렇듯 아름다운 빛을 통해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스카티는 실제 인물에 대한 사랑에는 무관심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미지에는 강박적이다. 영화는 바로 이미지, 정체성,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한 명상으로 보여질 수 있다.
Lee Friedlander, New Orleans, LA, 1968.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는 셀프포트레이트(Self-Portraits) 시리즈에서 미국을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촬영했는데, 그는 호텔방과 다른 장소들에서 그의 반영이나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지들의 구조를 숨기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즉, 카메라나 사진가로서의 활동을 연속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들은 매우 자기반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리들랜더의 Self-Portrait, New Orleans, LA (1968)는 상점의 창문에 비친 작가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익명의 타인으로서의 행인이 알리바이로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거기에는 프리들랜더 자신의 두 번째 반영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상점 뒤편의 유리로부터 반사되어 그의 심장에 통렬하게 자리잡고 있다. 즉, 전체 이미지는 반영을 통해 보여진다. 프리들랜더의 사진들은 회화적 형식의 급진적 재창조(radical reinvention)를 도입한 것이다. 그것들은 그림자와 반영이라는 파편화된 풍경으로서 “미국의 언어”(American Vernacular)를 제시한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거울의 방(a hall of mirrios)인 것이다.
William Eggelston, Untitled (Memphis), 1970.
사진의 배경으로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의 멤피스(Memphis, Tennessee)를 이용한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그의 일상을 주제로 탐구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일상을 무언가 이상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전환시킨다. 즉, 완연히 단순하지만 끝없이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이글스턴은 사진에 있어 일기적인 접근을 취하면서, 상상력을 통해 그의 개인적 경험을 여과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세발 자전거(Untitled [Memphis], 1970)를 생각해 보라. 공간적 단절과 크기의 놀라움에 대한 그 이미지를 말이다. 이글스턴 작업은 반박할 수 없는 ‘미국적 도상’(American iconography)의 일부가 되었다. 즉, 전세계에 걸쳐 있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자 시금석이 된 것이다.
Joel Sternfeld, After a Flash Flood, Rancho Mirage, California, 1979.
Richard Dreyfuss in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dir. Steven Spielberg), 1977.
조엘 스턴펠트(Joel Sternfeld)의 <American Prospects> 프로젝트 작업 중 하나인 <After a Flash Flood, Rancho Mirage, California>(1979)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주제를 표상한다. 즉, 불안하게 하는 심리적 이면을 내포하는 고전, 완벽성, 고정된 표면이 바로 그것이다. 명백한 색조와 환한 빛은 저 스스로 빛나는 세계 안에 이미지를 자리하게 한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동안 스턴펠트는 그의 승합차를 이용하여 미국을 가로지르면서 그가 볼 때 미국 풍경에 있어 모순성과 복잡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8X10 대형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또한 이와 유사한 풍경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이 니어리(Roy Neary, 리챠드 드레이퍼스(Richard Dreyfuss) 분)는 외계인에 의한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한 오하이오(Ohio) 교외의 분양지에 산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면도 크림을 시작으로 이것저것을 쌓아간다. 그는 이러한 잡동사니 더미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건 중요해. 이건 의미가 있다고.” 이 잡동사니 더미는 점점 더 커져가면서 뚜렷한 형체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강박관념이 커져 갈수록 그는 자신을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시킨다. 이러한 행위는 로이가 거실에 가정용품과 뒤뜰의 잔여물들로 제작한 괴상한 제의적 구조물을 짓는 것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바로 영화의 이 장면에서 다양한 대립들이 모두 모인다. 즉, 내부와 외부 공간, 인공성과 자연성, 정상성과 비정상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Larry Sultan, Mom Looking Through Curtain, 1989.
래리 설튼(Larry Sultan)의 작품인 <Pictures from Home>에서 퇴직자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의 부모를 또 다시 창문을 사용하여 촬영했다. 거기에는 전망창의 프레이밍을 통해 환기되는 계획된 고립의 감각이 존재한다. 관람자와 주체, 주체와 세계 사이의 일종의 분열이 말이다. <Mom Looking Through Curtain>(1989)는 바로 소외와 친밀 사이에서의 기묘한 충돌이 일어나는 이미지이다. 창과 커튼은 이상적인 상징을 제공하는데, 그것들은 분리된 유리한 지점으로부터 시각적 접촉을 허용한다.
Kyle McLachlan in Blue Velvet (dir. David Lynch), 1986.
앞으로의 내 인생을 예술가로서 살도록 변화시킨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의 <블루 벨벳>(Blue Velvet, 1986)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대학원생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았을 당시 사물에 대한 인식이 결코 같을 수 없음을 깨달았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외관상 아무런 특징도 없는 장소의 닫힌 문들 뒤에 존재하는 음울한 매혹들의 탐험으로 ‘미국적 도상’(American iconography)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이 영화에서 린치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밝고 채도가 높은 컬러들을 어둡게 변화하도록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건전하고 순수한 젊은이인 주인공 제프리 버몬트(Jefferey Beaumont, 카일 맥라클란(Kyle McLachlan) 분)는 우연히 그를 명백히 불건전한 일련의 사건의 한복판으로 돌진시키는 그로테스크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마을의 지하 세계를 살아가는 어두운 인물들의 삶 속으로 여행하게 된다. 제프리는 마약 거래상들의 잔혹한 세계 속으로, 그리고 폭력적이고 괴팍한 악인인 갈취자 프랭크 부스(Frank Booth,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 분)에게 점점 더 끌려들어가게 된다. 제프리는 강박적이 되어가며, 겁에 질려있고 절망적인 프랭크의 성적 노예이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자 도로시 밸런스(Dorothy Vallens,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 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영화에는 제프리가 도로시의 아파트 옷장 속에서 프랭크와 그녀를 바라보는 전환적인 장면이 있다. 즉, 목격자와 당사자, 욕망과 죄, 사랑과 폭력 사이의 선들이 흐릿해질 때 우리는 바로 존재하고 있으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기증>처럼 <블루 벨벳> 또한 성적 강박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두 작품 모두 창조자의 갈망과 두려움에 대한 탐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hilip-Lorca diCorcia, Mario, 1978.
1970년대 후반,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Philip-Lorca diCorcia)는 국내의 다양한 장면들에 대한 연출 사진을 찍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이미지와 영화적 효과의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는 사진적 감수성을 인지하면서 연극성과 일상이 완벽하게 결합된 많은 작업을 창조했다. <Mario>(1978)는 멍하게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는 디코르시아의 형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이런저런 행위들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의 허구 속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사건이 어쩐지 계산적인 순간으로 치환된다.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48, 1979.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Untitled Film Stills> 시리즈는 대중 문화의 영향력 내에서 보자면 사진을 영원히 변모시켰다. 그녀의 사진들 역시 반영하는 이미지들, 정체성,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특정 유형의 개인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셔먼의 <Untitled Film Still #48>(1979)에서 쓸쓸한 여자 한 명은 텅 빈 고속도로 한 켠에 등은 카메라 쪽을 향하고 여행 가방은 옆에 둔 채로 서 있다. 길은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멀어져 간다. 이 사진은 (호퍼의 실내와 같이) 고독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환기시킴으로써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Julianne Moore and Jason Robards in Magnolia (dir. Paul Thomas Anderson), 1999.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영화 <매그놀리아>(Magnolia, 1999)는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는 서로 아무런 일련의 관련도 없어 보이는 주인공들의 삶을 탐구하는 현대판 멜로드라마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지막에서야 기적적인 자연 현상을 통해 모이게 된다. 바로, 개구리 비가 하늘로부터 내리는 환상적인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비록 이 이미지가 환각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앤더슨은 비범한 리얼리스트적 감각과 확실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장면은 논의중인 많은 작품들처럼 현실성과 환상성의 완벽한 결합으로 묶어낸다.
물론 나의 사진에 대한 비전을 규정짓는데 많은 다른 예술가들의 도움이 있었다. 내가 10살이었던 1972년, 정신분석학자였던 아버지는 뉴욕현대미술관(New York’s Museum of Modern Art)에서 있었던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회고전에 나를 데려가셨다. 나는 그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나로 하여금 사진가가 되기를 원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스의 이미지들은 삶보다 컸고, 어떤 면에 있어서 그녀의 이미지들은 무언가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작업은 완전히 독창적인 형식적 접근법으로 미국의 실존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다. 그녀는 시각적 서사에 대한 나의 이해와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나의 이해에 지울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나는 나중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독창적인 프로젝트인 <The Americans>가 미국적 삶과 풍경에 대한 아버스의 시선에 있어 선구자 격임을 깨달았다. 프랭크의 작업들은 이제 미국적 신화의 일부가 되었으며 – 다시 한 번 호퍼를 반추할 때 – 그는 그의 이미지에 있어 빛을 중요한 서사 도구로 사용한다.
다른 작가들은 일기 형식의 표현을 통해 날카로운 동요를 관객들에게 전달하였다. 낸 골딘(Nan Goldin)은 그녀의 주목할 만한 작품인 <Ballad of Sexual Dependency>에서 예술가들이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거의 성취하지 못했던 깊이 있는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보여주었다. 반면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의 <Uncommon Places>는 거의 워홀(Warhol) 풍의 작업을 선보이는 동시에, 그만큼 인상적인 냉정한 ‘공허’(자전적 작업에 있어 작가의 존재가 결여된)를 전개시킨다.
나의 작업은 자꾸만 다시 아메리칸 드림과 그것의 어두운 이면으로 향한다. 이러한 작가들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미국적 삶의 복잡성과 그것의 선악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훨씬 덜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의심의 여지 없이 나 자신의 비전은 완전히 다른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2005년 뉴욕대(New York University), 2006년 윌리엄스 대학(Williams College)의 ‘Plonsker Family Lecture in Contemporary Art’에서 있었던 <불안하게 하는 이미지들>(Disquieting Images)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바탕으로 합니다. 저자는 자료 수집과 글의 편집에 있어 도움을 준 코시 테오돌리-브라스키에게 감사를 표하길 소망하였습니다.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과의 독점 인터뷰는 <Aperture>의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www.aperture.org/crewdson을 참조하십시오.
'Archive > 논문과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APERTURE VOL.191]<Impressed by Light>전을 통해 다시 보는 탈보트(Talbot) (0) 2009.09.24 [APERTURE VOL.190]보리스 미하일로프(Boris Mikhailov) (0) 2009.09.24 [APERTURE VOL.190]Colour Before Color - Martin Parr (0) 2009.09.24 [APERTURE VOL.195]왜 사진은 전례없이 예술로서 중요한가-마이클 프라이드와 제임스 웰링의 대화 (0) 2009.09.13 [APERTURE VOL.195]화가가 만들어내는 차이 - 에드워드 호퍼와 사진, 제프리 프렝켈과 로버트 아담스의 노트 (0) 2009.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