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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RTURE VOL.191]<Impressed by Light>전을 통해 다시 보는 탈보트(Talbot)Archive/논문과 기사 2009. 9. 24. 04:25
IMPRESSED BY LIGHT: BRITISH PHOTOGRAPHS FROM PAPER NEGATIVES, 1840-1860
- Laurie Ddahlberg -
본 글은 'APERTURE' 191호 (2008년 여름호) 리뷰(Review) 섹션의 글을 발췌 번역한 글임을 밝힙니다.
본 전시는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ity: 2007년 9월 25일~12월 31일)에서 열렸으며, 워싱턴 D.C.의 미국 국립 예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2008년 2월 3일~5월 4일)과 파리의 오르셰 박물관(Museé d’Orsay, Paris: 2008년 5월 26일~9월 7일)까지 순회 전시되었다.
Alfred Capel Cure, My Beasts, February 1, 1852
John Muir Wood, Family Group, Leith, 1847-52
Thomas Keith, Cardinal Beaton's House, Edinburgh, 1854-57
이제 대부분의 사진 애호가들은 (사진)매체의 탄생이 이를 위한 산파들의 경쟁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다. 즉, 몇몇 국적의 발명가들 각자는 자신이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의 생생한 이미지를 붙잡아 정착하는데 최초로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경쟁이 궁극적으로는 두 사람의 경쟁자로 압축된다는 것까지 인식하고 있다. 바로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흥행주였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와 영국의 귀족이었던 윌리엄 헨리 폭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가 그들로, 이들 각자는 자신들 고유의 사진 프로세스를 옹호했다. 1814년 개전(開戰)의 중단 이래로 서로 좋은 분위기이긴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오래된 적대적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과 “탈보타입”(talbotype) 간의 경쟁을 강력한 국수주의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두 가지 프로세스의 실천이 애국적 충성심보다는 계급적 특권에 의해 보다 날카롭게 포착된다는 점이다.
4년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사진의 여명: 프랑스의 다게레오타입들, 1839-1855>(The Dawn of Photography: French Daguerreotypes, 1839-1855)전을 개최했다. 이 멋진 전시는 최초의 경쟁자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바쳐졌는데, 그들은 예술품(art production)에서 동물학(zoology)까지 이르는 – 알파벳의 중간에 해당하는 ‘p’에서 멈춰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 역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 장대한 영역에 적용된 이러한 까다롭고 힘든 프로세스에 수반되는 재주와 창의성 이상의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 박물관은 우리에게 탈보트의 유산을 제시하고 있는데, 탈보트의 과묵한 성격은 – 그는 1834년경 이미 쓸만한 프로세스를 알고 있었으나 출판을 연기하였다 – 그를 다게르의 그림자에 사실상 가려지게 하고 말았다. <Impressed by Light> 전(展)은 탈보트의 특허명인 “칼로타입”으로 총칭되어 알려진 프로세스 즉, 네가티브 종이(paper negatives)로 얻어진 100장 이상의 사진들을 모두 보여준다. 사진사학자들은 탈보트에 의해 고안된 현상방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만을 위해 – “네가티브 종이로 된 사진들”이라는 성가신 꼬리표인 – 이 용어를 남겨두고자 한다.
만약 다게르의 프로세스가 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모호한 주장이 이점을 갖고 있다면, 탈보트의 프로세스는 그것의 완전한 편리함으로 이러한 이점을 상쇄하는 것처럼 보인다. 금속판을 이용하는 다게레오타입과 비교해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보다 싸고 가벼웠으며, 준비에 용이했다. 또한 이는 큰 사진이나 여행 사진에 보다 실용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게레오타입이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칼로타입의 음양기법(a negative/positive process)은 복제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점은 탈보트가 희망했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게르의 프로세스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능가할 수 없는 선명도와 계조를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현실에 대한 초월적 환영은 사진의 최초 관객에게 마법을 걸었다. 반면 칼로타입은 직조된 섬유로 된 네가티브 용지에 이미지를 받아들였으며, 감광된 이미지는 양화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 결과 이미지는 보다 흐릿하게 표현되었으며, 동시에 강한 계조의 대조로 나타났다. 이들 두 프로세스는 서로 명확히 달랐으며, 비록 탈보트가 그의 모든 수사적 힘을 동원하여 칼로타입이 지닌 “렘브란트풍의” 특별한 가치들을 강조했다 하더라도, 그는 추종자를 찾기 위해 분투하였다. 심지어 그의 친구이자 동향 사람인 존 허설 경(Sir John Herschel) 마저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수장에게 일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게르의 이러한 역작들과 비교할 때, 탈보트 씨는 모호하고 안개가 낀 듯한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Impressed by Light> 전의 기획자들 – 외부 큐레이터인 로저 테일러(Roger Taylor)와 더불어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의 말콤 다니엘(Malcolm daniel), 그리고 미국 국립 예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의 사라 그리너프(Sarah Greenough) – 은 앞서 말한 탈보트의 프로젝트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을 재고하려 했으며, 종이를 사용하는 방법(paper process)의 궁극적인 성공을 주장하였다. 20여 년에 걸친 사진 활동을 다루는 이 전시는 1841년의 탈보트의 초기 작업 몇몇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시는 탈보트의 시험적이었던 초기 단계를 너머 종이 프로세스를 더욱 잘 사용했던 1850년 대의 사진가들의 활동을 전시한다. 물론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몇몇 보석 같은 작품들이 있지만, 40명의 이름 대부분은 관람객들에게 아마도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벤자민 브레크넬 터너(Benjamin Brecknell Turner)의 시골 풍경들이나 알프레드 카펠 큐어(Alfred Capel Cure)의 중세풍의 폐허 사진들은 왜 음화용지방식(paper-negative process)이 작가들의 선택으로 권장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즉, 잎사귀와 돌에 대한 세밀한 부분은 용지의 포괄적인 색조 효과로 녹아들기 시작해, 목탄이나 에쿼틴트1) 같은 작업과 흡사한 이미지를 남긴다. 큐어의 벌레 채집 – <나의 짐승들>(My Beasts)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목이 붙은 네가티브로 저장된 작업 – 은 시각을 앎과 동일시하는 근대의 경험주의적 성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쫙 펼쳐진 박쥐 위에 얹혀진 판 위에 꽂힌 섬세하며 색조가 반대로 묘사된 이러한 나방들, 지네들 및 이와 비슷한 것들은 오늘날 분류학적 기록물이라기 보다는 즐겁게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보이는 듯하다. 존 무이어 우드(John Muir Wood) – 그의 작업들은 사진에 대해 어쩐지 초자연적인 감정을 품었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Edinburgh)의 힐(Hill)과 아담슨(Adamson)의 영향에 까지 생각을 확장시킨다 – 는 한가로운 아마추어의 관심사에 가까운 주제들에 대한 표본추출을 보여주었다. 즉, 그는 고요한 자연에 대한 연구들, 특수한 풍경의 형성물들, 가족 구성원들의 초상들, 그리고 쇠퇴해가는 중세풍의 건축물들에 대한 섬세한 명상들 따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치 먼 옛날의 문이 저 너머의 봉인된 정원으로 통할 것만 같은 어렴풋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 옆에 보초처럼 서 있는 남자 아이를 담은 우드의 불가해한 사진은 <문 앞의 성 베드로>(St. Peter at the Gates)2)에 대한 리얼리스트적 변주를 제공한다.
몇몇 이미지들은 본질적으로 근대적인 주제들 – 제임스 머드(James Mudd)의 증기기관 사진, 또는 터너(Turner)와 휴 오웬스(Hugh Owens)의 수정궁(Crystal Palace)3) 전시 사진들 – 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축적되는 인상은 이들 사진가들이 영속적인 –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 주제들을 탐구한다. 이는 확실히 다게레오타입을 넘어서는 종이 프로세스 혹은 습판법을 선택했던 자기선택적 그룹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다시 말해, 신사 계급 (그리고 약간의 숙녀 계급) 아마추어들은 예술 도구들의 세련화를 통해 사진을 변형시킴으로써 사진의 거친 근대성을 경감시키고자 노력했다. 여행자들은 현장에서의 편리성을 위해 – 존 머레이(John Murray), 로저 펜튼(Roger Fenton), 리노스 트립(Linnaeus Tripe) – 이러한 방식을 채용했으며, 다른 몇몇은 상업적 복제성을 위해 – 존 스튜어트(John Stewart), 토마스 서튼(Thomas Sutton) – 이를 채용하였다. 그러나 주된 사용자들은 – 프랑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 예술적 열망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즉, 이러한 방법을 채용한 사람들은 사회적인 엘리트 그룹으로서 탈보트의 “모호하고 안개 낀듯한 것들”이 산업시대의 혁신들과 확립된 문화적 이상들을 조화시키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감각에 가장 충실한 것이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탈보트의 유산을 평가해야 할까? 확실히 그것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근대성의 목적인(telos, 目的因)4)을 잘 만족시켰는가에 따라야 할 것이다.
1) 에쿼틴트: 판화 기법의 하나. 에칭의 한 갈래로서 폭넓은 색조 범위를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 기법을 애쿼틴트라고 하는 이유는 완성된 작품이 수채화나 담채화와 비슷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판 위에 송진 가루나 설탕을 엷게 입힌 뒤 산(酸)을 접촉시키는데 이때 산은 송진이나 설탕 알갱이 사이의 틈새에서만 판을 부식하여 표면에 작고 고른 점각을 남긴다. 알갱이를 떼어내고 판을 인쇄하면 넓은 범위의 색조를 얻을 수 있다. 동판에 닿는 산의 농도와 부식시간을 다양하게 조절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조들을 얻을 수 있다. 더욱 뚜렷한 형태를 얻기 위하여 에칭이나 인그레이빙 기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17세기에 뒷날 애쿼틴트 판화로 알려지게 된 것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들이 있었으나 1768년에 와서야 프랑스의 판화가인 장 바티스트 르 프랭스가 송진 알갱이를 사용하여 성공했다. 애쿼틴트는 18세기 후반에, 특히 삽화가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색조의 판화를 만드는 데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데 고야를 제외하고는 유명한 미술가들도 여전히 그것의 섬세한 질감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고야가 만든 판화의 대부분은 애쿼틴트이며 그는 이 기법의 가장 뛰어난 대가로 생각되고 있다. 고야가 죽은 뒤 애쿼틴트는 오랫동안 거의 잊혀져 있다가 에드가 드가(1834~1917)와 카미유 피사로(1830~1903)가 시도하기 시작했으며,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루오와 같은 20세기의 미술가들이 때때로 설탕을 사용하는 애쿼틴트를 되살렸다. 현대의 판화가들은 송진 대신 농축 플라스틱 용액을 분무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출처: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2) ‘St. Peter at the Gates’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대로 해석한다.
3) 수정궁(Crystal Palace): 수정궁은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가 열린 건물이다. 팩스턴 경(Sir joseph Paxton)이 설계했다. 벽과 지붕이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주철의 기둥이 건물을 지탱했다. 벽돌등의 기존소재를 쓰지 않은 디자인은 영국이 산업 혁명으로 기술발전을 이루었음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었다. 193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4) 목적인(telos, 目的因): 목적은 사물의 존재와 생성, 행위를 촉구하고 이유를 부여하는 것으로, 넓은 뜻으로는 일종의 원인으로 생각하는데 이를 말하는 철학 용어이다. 목적이 있음으로써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는데, 목적은 운동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목적이 사물의 원인으로 생각되는 경우에는 궁극인(窮極因)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학문에서 연구대상이 되어야 할 사물의 원인을 질료인(質料因)·형상인(形相因)·작용인(作用因)과 함께 4개로 구분하였는데, 생물이 종자의 상태에서 점차로 성장하여가는 그 자연물의 생성의 목적인은 생물의 그 종류가 본래 가져야 할 정신적이고 완전한 상태의 실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러한 상태야말로 그것의 형상이므로 목적인과 형상인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고 선택하므로 넓은 의미에서 이를 선(善)으로 규정하였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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