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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이야기하다(Talking Trash)Archive/논문과 기사 2011. 9. 16. 17:31이 글은 쓰레기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현상에 대한 킴 레빈(Kim Levin)의 글(「ARTnews」2011년 6월)의 요지를 정리해 둔 것임을 미리 밝힌다.
In Mary Boone with Cube, 2010, Mika Rottenberg, 2010, video. NICOLE KLAGSBRUN GALLERY, NEW YORK 소장
쓰레기가 예술작품을 위한 재료가 될 수 있을까?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예술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된 현재 쓰레기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 쯤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쓰레기를 작품을 구성하는 소재쯤으로 생각하는 것과 쓰레기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다루는 것에는 좀 차이가 있을 것도 같다. 킴 레빈은 바로 쓰레기를 단순히 예술작품의 소재로서만이 아니라 작품의 주된 주제로 다루는 경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경향이 20세기의 미술과 비교하여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 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녀가 지적하고 있듯 20세기는 "진보와 추상, 유토피아주의, 인공물, 일회용품과 투척물들, 사라져 가는 것들과 새로운 것이 더 좋다는 주의"의 시대였다. 요컨대 발전과 진보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리고 생산과 소비의 엄청난 속도로 정의되는 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쓰레기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금새 새로운 것들에 밀려 자리를 잃고 마는 모든 것들은 곧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의 말처럼 20세기를 쓰레기의 세기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어쩌면 무리는 아닐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쓰레기의 시대에는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지적하듯 우리는 피카소의 초기 콜라주 작업들이 신문지나 벽지들로 만들어졌음을, 그리고 그의 조각이 자전거 핸들과 의자로 만들어졌음을 너무도 쉽게 지나쳤다. 이러한 재료들은 다름 아닌 일종의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쓰레기로 만들어진 20세기의 수많은 작품들 앞에서 그것이 쓰레기라는 사실은 망각해 왔다. "쓰고 버리는 문화가 너무나도 은밀하게 수 년 동안 예술로 침투하여 그것의 실체는 인지되지 않았다. 혐오예술(Abject art), 펑크아트, 그런지(Grunge)에 대한 논의에서 조차도 말이다"라는 그녀의 말은 이러한 20세기의 현실을 날카롭게 재조명한다.
그렇다면 21세기 예술에서의 쓰레기는 20세기의 양태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20세기에는 예술작품에서 쓰레기가 빈번하게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21세기에는 예술작품에서 쓰레기를 단순한 소재로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쓰레기에 대한 작품이라는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표현하고자 한다. 킴 레빈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상황을 압축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20세기 기간 동안 쓰레기는 과거를 지시하는 재료였다. 말하자면 쓰레기를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신조로 삼은 작가들에 의해 재활용되었던 것이다. 아직 예술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들은 그것들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었다. 재활용은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팽배했던 시기 동안 과거를 폐기하는 우회적인 방법이었다. 쓰레기는 또한 당시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한 원천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묘하지만 중요한 태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쓰레기가 생태적이고 환경주의적인 중요성과 더불어 하나의 주제가 된 것이다. 문맥(context)이 바로 모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푸르름과 무탄소 쿠폰을 인식하고 쓰레기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을 아이러니하다고 말해야 할까? 지난 가을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렸던 라우젠버그(Rauschenberg)의 작품에 대한 인상적인 개관은 매우 시의적절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이 전시는 라우젠버그가 쓰레기로 만든 작품들이 지닌 위대함을 되살려냈으며, 자신에 대한 라우젠버그의 많은 후기 모방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들을 제거하는 것을 다루었다.
다시 말해 이제 쓰레기는 과거를 폐기하기 위해 예술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가득찬 현실에 대한 주제를 심화시키기 위해 예술로 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예술이 쓰레기를 다루고 인식하는 방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는 것에는 물론 무리가 따를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쓰레기를 생산하고 발전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필자가 지적하고 있듯 이제 쓰레기는 넘칠대로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상황에 있어 예술에 있어서도 쓰레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은 필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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