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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힐러드 David HilliardArchive/아티스트 2009. 9. 18. 23:29
데이빗 힐러드 David Hilliard
1964년 메사추세츠 로웰에서 태어난 미국의 사진작가.
메사추세츠 컬리지 오브 아트Massachusetts College of Art, Boston에서 BFA.
예일Yale에서 1994년 MFA.
파노라마적 사진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그는 그의 개인적 삶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삶들을 그의 작업의 주제로 삼아 기록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거기에는 허구적인 요소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장면들이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Green House
Kiss, 1994
Dad, 1998
Rising, 1998
Hulk, 2003
Susie Floating, 2003
Ruminate, 2005
Recreation, 2004
Doting on Jane, 2007
Home, Office, Evening, Day, 2006
우선 힐러드 자신이 자기 작업에 대하여 쓴 짧막한 글을 그대로 옮겨볼까 한다.
몇 해 동안 나는 나와 내 주변의 삶들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사건들을 담아 왔으며 때때로 혼돈스러운 세계에 질서를 창조하려고 시도해 왔다.
내 사진들은 개인적이고 익숙하며 정말로 평범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내 작업은 자전적인 것과 허구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진 속에서 물리적인 거리는 감정적인 거리를 제시하기 위해 자주 조작된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무심한 시선들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얼핏 주관적이고 친숙하게 보이는 것은 꽤나 자주 더 큰 삶의 윤곽에 대한 논평일 수 있다.
내게 있어 단순한 많은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파노라마적 사진들의 구조는 시각적 언어로 기능한다.
각각의 사진마다 초점 면들은 변한다.
이러한 사진의 배열과 초점면의 변화는 감상자들의 시선을 움직이게 하여 내가 그들을 사진을 따라 이끌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장의 이미지를 통해서는 이루기 힘든 효과이다.
나는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만드는 관계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상들을 표현하기를 꾸준히 열망한다.
나는 사진들이 전달하는 메세지들이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경험들 모두를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나는 예술가이자 한 개인인 나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한, 그리고 생각, 순간 혹은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사진의
완전한 능력과 영속적인 힘을 안다.
For years I have been actively documenting my life and the lives of those around me, recording events and attempting to create order in a sometimes chaotic world. While my photographs focus on the personal, the familiar and the simply ordinary, the work strikes a balance between autobiography and fiction. Within the photographs physical distance is often manipulated to represent emotional distance. The casual glances people share can take on a deeper significance, and what initially appears subjective and intimate is quite often a commentary on the larger contours of life.
For me, the construction of panoramic photographs, comprised of various single images, acts as a visual language. Focal planes shift, panel by panel. This sequencing of photographs and shifting of focal planes allows me the luxury of guiding the viewer across the photograph, directing their eye; an effect which could not be achieved through a single image.
I continually aspire to represent the spaces we inhabit, relationships we create, and the objects with which we surround ourselves. I hope the messages the photographs deliver speak to the personal as well as the universal experience. I find the enduring power and the sheer ability of a photograph to express a thought, a moment, or an idea, to be the most powerful expression of myself, both as an artist, and as an individual.파노라마 사진을 연상시키는 힐러드의 사진은 일반적인 파노라마 사진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며, 이것이
그의 작업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촬영하거나, 여러장의 사진을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조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눈에 살펴볼 수 없는 넓은 광경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힐러드의 작업은 그러한 의도에서 파노라마 사진의 형식을 도입하고 있지 않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우선, 그의 여러장의 사진들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공간은
굳이 파노라마로 촬영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범위이다.
말하자면 한 컷으로 찍어도 충분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또한 그는 가로 이미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로 이미지 또한 다수 제작하고 있다.
그가 이미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 했듯, 결국 그의 파노라마 이미지는 전통적인 파노라마 사진의 목적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하나의 장면을 단지 파노라마적 기법을 이용해 절단시켜 놓은 듯이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의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매우 독립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연결되는 복수의 이미지들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한 장의 독립적 사진이 될 수 있을만큼 그의 구성은 치밀해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파노라마 이미지들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도록 유인해 내며,
우리가 이러한 그의 유인에 기꺼이 따라갈 때 우리는
일상에 대한 인식의 또 다른 방법을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분절되고 독립된, 그러나 연결된 이미지들은
일상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주요한 표현기법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모든 것들은 따로 분절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마치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서로 독립적이지만 원자 자체로는 구체적 물질이 아님과 같다고 할까.
더 나아가 그의 파노라마 이미지는 현실 자체가 사실이면서 동시에 허구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작품들이 대개 연출된 상황을 사실처럼 보이게 촬영해서이기도 하고,
그 스스로가 이러한 언급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절된 이미지들의 촬영된 형태를 통해 이러한 사실과 허구의 병치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직, 수평으로 정확히 촬영된 이미지들의 중첩보다는
같은 수직과 수평이더라도 조금은 다른 시점들로 촬영된 이미지들을 그는 의도적으로 병치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공간감과 원근감 등은 매우 자주 왜곡되고 있다.
이런 구성은 어찌됐든 물리적 실체를 일체의 조작없이 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실적임과 동시에
시점의 변화만으로 왜곡된다는 점에서 허구적이다.
이는 '사실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실을 보는 것'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오래전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이 과연 사실을 기록하는가라는 논쟁까지도 그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되새기도록 한다.
비록 분절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연출된 장면들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은 분명 순수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진이 다큐멘터리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의 사진은 분명 카메라라는 매체 자체가 지닌 기록성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www.davidhilliar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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