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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 Hee Jin Kang - 'Sandy's Deli' and etcArchive/아티스트 2009. 9. 18. 23:59
강희진 Hee Jin Kang
Born in Seoul
Based in Brooklyn, NY
Royal College of Art, London, Fine Art Photography MA, 2000-2002
Yale University, English Literature BA, 1992-1996
서울에서 출생 했으나 3세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우선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Sandy's Deli 시리즈를 천천히 보도록 하자.
자, 사진을 다 본 이들에게 질문.
작가가 촬영한 곳은 어디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이 곳은 한국인가 미국인가?
굳이 대답하자면 작가가 촬영한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있는 장소이지만
문화적 맥락하에서 이 곳은 미국도 한국도 아닌 중간지대가 된다.
고정된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논의는 살며시 내려놓고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적어도 공통적으로 하나의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합의된 기준 같은 것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강희진이 촬영한 이 공간은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있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이루는 비무장지대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가 자신이 작품에 대하여 한 말을 그대로 옮겨보도록 한다.
"2년동안 나는 뉴욕시 교외 지역의 한 모퉁이에 있는 나의 부모님의 가게 '샌디스 델리 Sandy's Deli'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 장소를 사진으로 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단 한번도 부모님을 카메라로 직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분들의 포트레이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4x5 뷰카메라로 작업을 하면서, 겹겹히 쌓여온 세월의 흔적과 온갖 물건들이 혼란스럽게 놓여있는 가운데에서도 나름대로의 규칙적인 리듬을 지닌채 병치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공 장소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 상점과 같은 장소에서조차 오랜시간 천천히 자연스럽게 쌓여온 것들이 하나 하나씩 들어내지며 단순하면서도 시적이고 또한 지극히 사적인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걸려있는 손거울, 노란벽에 걸린 달력위에서 쌍을 이루고 있는 석양의 모습, 이상한 곳에 꽂혀있는 가족사진처럼 무심코 지나쳐왔던 사물들을 나의 사진은 크게 확대하여 관찰한다. 나의 부모님은 가게에서 사진찍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분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곳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완전히 매혹되어 버린 나의 마음을 두분께 설명드리기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과 싸워야 한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3살때 미국으로 이민오셨고 나의 한국어 실력은 대략 부모님의 영어실력 만큼의 것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의 언어처럼, 대화는 가능하지만 상당히 초보적인. 이 두개의 초보적인 언어들 사이 어딘 가에 놓인 우리들의 대화는 단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 속내에서 우리는 절대 서로의 의사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우리들은 단어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 정체성, 문화, 세대사이의 흐름, 혹은 끊김은 많은 가족에게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언어로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자 나는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친밀감이나 애정을 사진으로 잡아내거나 시각화할 수 있는 것인지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마도 이 사진들은 그 사이의 틈을 잇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서, 그렇게 사진으로 우리들이 놓치고만 단어들을 채워넣는다." (원문: http://www.heejinkang.com, 번역: http://blog.naver.com/lenz1839)
사실 아시아계 미국문학을 포함한 문학의 영역에서 개인의 국가적/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담론들은 이미 꽤나 많이 양산되어 왔고,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그녀의 작품은 내용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대상들 간의 구성과 긴장감은 글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몰입감과 힘을 보여준다.
또한 '이방인'이 되어보지 않고서, 특히 영원히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야되는 운명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
그녀가 고민하는 것들에 쉽게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지구촌, 세계화, 다문화주의 따위의 용어들이
물리적, 정신적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는 현대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상황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마음껏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현상황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근원은 어디인가 묻거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강희진의 작품들은 자신이 처한 경계적 상황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계적 상황에 대해 그녀 자신이 어떠한 가치판단도 유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공간임을 드러내주는 사물들과 한국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물들은
서로 묘하게 뒤섞여 있어서 어느 곳으로도 무게 중심이 옮아가지 않는 균형적 상태를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영어가 모국어인 그녀와 한국어가 모국어인 그녀의 부모가 평화 상태를 이루는 비무장지대와 같은 중간지점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작품에서 더욱 주목한 것은 그녀가 이러한 '익숙해져버린'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시야각이다.
현대 예술의 많은 작업들이 주제면에 있어서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할 때
정작 중요한 것은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가지게 되는 정체성이라는 주제적 인식만큼
그것을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예술가로서의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들은 얼핏 일상 풍경을 촬영한 단순한 다큐멘터리 작업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시야각은 매우 의도적으로 좁다.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할 문제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앞서 말한 경계적 위치가 엄격하게 구성되어 있는 부분으로
화각을 좁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는 전체적인 풍경을 촬영하고 있지 않고
부분 속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그녀의 일상에 대한 태도는
다음의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가 일상 주변에서 매일 지나치게 되는 사소한 물건들은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 지 보여줘요. 우리와 세상 사이에 있는 매개체인 거죠. 그 사물들은 너무나도 평범해지고 우리의 일부가 되어서 우리는 그것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되죠. 이러한 사물들은 그때그때마다 쌓이기 마련인데 사진에 보이는 바와 같이 겹겹이 쌓여서 어떠한 층을 이루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이렇게 쌓인 사물들은 시간의 흔적을 반영하고 스스로의 생명력도 지니게 됩니다. 이런 많은 물건들은 대부분 닳았거나 끝이 해어져있는데 이는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미학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제 사진들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사물들을 크게 확대하여 관찰한 것인데 이 이미지들이 단순하고 지루한 사물들을 무언가 인간적이고 아름답고 시적인 것으로 끌어올리잖아요. 저는 대형포맷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그건 제가 그로인해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사진들은 제가 유심히 관찰하여 찾아낸 사물과 색과 공간을 어떤 특별한 의도를 없이 병렬 배치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처럼 대상의 일부로 시선을 제한시키는 그녀의 촬영 방식은
다큐멘터리적인 그녀의 사진을 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또한 이러한 접근을 대형 카메라로 포착함으로써
대상들과 그것들 사이의 관계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J'ai Un Amant
Hair
Kissable
일상적인 풍경이나 사물들을 의도적으로 좁흔 화각이나 확대의 방식으로
보여줄 때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내게 있어
강희진은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있는 그대로를 찍는다고 여겨지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시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또다른 가능성을 그녀는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굳이 다른 매체와의 결합이나
사진 이미지에 대한 인위적 조작없이도
창작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
그것은 내게도 여전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런 상황을 비유하자면
관념적 단어들로 가득찬 시와
일상적 언어로 표현된 시의 관계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비전을 얻기를 늘 원하는 내게 있어
시적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나의 궁극적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blog.naver.com/lenz1839 사진이 걸린 방
월간사진 2008년 6월호 pp. 106-115, 이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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